서심화야

서심화야 26회차

도노 헤세 2015. 5. 24. 20:50

 

La maîtrise de soi dépend-elle de la connaissance de soi ?
자신에 대한 통제는 자신에 대한 앎에 의존하는가?

 

*본 글은 난징 대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쓴 작품입니다.

 쾅!
 귀를 찢는 폭발음이 익숙해진지도 벌써 나흘째이다. 어쩌면, 폭발이 연이어지고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내 감각이 하나둘 죽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진 내 앞으로 네 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 줄만이 남았다. 그것은 곧 세 번의 폭발 후 내가 저 불구덩이 속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살아있는 후각이 벌름거린다. 살이 탄내가 진동을 한다.
 옆에서 한 여자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채 다섯 살도 되지 않았을 어린 아이다. 젊은 엄마가 황급히 아이를 끌어안고 입을 틀어막지만 쉽사리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주위에 있던 자들의 석고 같던 표정이 깨진다. 짜증, 불안, 낙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마이너스 감정이 그들의 틈으로 흘러나와 전체를 적신다. 이 작으면서도 거대한 소란을 악마와 같은 저들이 무시할 리 만무하다. 방금 전까지 발버둥 치던 이들을 불 속에 던지고 왔을 병사 두세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얼굴엔 일반적인 살인자들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약간의 감정-그것이 플러스 감정이든 마이너스 감정이든-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집 밖에서 소리가 들리니 구경이라도 왔다는 태도로, 그들은 심지어 약간의 흥미로움까지 담아 우리들 사이를 총칼로 비집는다. 병사들을 보고 더욱 빽빽 울고 있는 여자 아이와 이제는 입을 틀어막을 생각조차 못 하는 젊은 엄마. 외국인인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더니 곧 젊은 엄마의 팔을 잡아끈다. 그녀가 발버둥치자 한 명이 총대로 배를 퍽 소리가 나도록 친다. 다른 이는 제 어미를 쫓아가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달래주기라도 할 듯 과자 부스러기를 건넨다. 울고 있는 아이는 지켜보고 있는 이의 강압에 의해 끅끅이면서도 입 안으로 그것을 밀어 넣는다. 그와 동시에 총성이 터진다. 아이가 볼칵 과자 부스러기가 엉긴 핏덩이를 토해내며 쓰러진다. 그들의 낄낄거리는 소리와 젊은 엄마의 비명소리가 진동을 한다. …우리는 오늘도 방관자의 역할을 뒤집어쓴다.
 그들은 아이의 시체를 치우지도 않았다. 열을 흐트러뜨리면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에, 우리는 죽은 아이를 옆에 둔 채 밤을 지새운다. 시체가 끓어가는 냄새가 더 이상 역겹지 않다. 우리의 몸에는 이 아이가 내는 것보다 더한 역내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그녀를 방관밖에 할 수 없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제 죽은 자식이 시야에 사라지지도 않은 자리에서 어미를 강간하고 있는 저들이 떠넘긴 역내다.
 젊은 엄마의 비명이 잦아들 무렵, 유난히 생경한 구두소리가 가까워진다. 여기로 끌려오는 동안 한 번밖에 보지 못했던 화려한 군복을 입은 이들이 병사들을 끌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병사들보다도 훨씬 말끔하고 품위 있는 모습의 그들이지만 우리를 내려다보는 시선만은 일개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 흥미, 어린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목각 인형을 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여전히 우리는 알 수 없는 외국어가 그들 사이에서 오가더니 곧 병사들이 움직인다. 내 바로 뒷줄까지, 제대로 가늠할 순 없지만 대략 이삼백 명쯤 될법한 사람들이 병사들에 의해 질질 끌려간다. 그들에게 우리는 사람, 최소한의 짐승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 끌려가다 쓰러지면 쓰러진 대로 발로 차가면서 데려가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은 병사들은 그들이 도망치게 하지 못하려는 이유인지 주위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선다. 아마 우리가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듯, 그들 또한 우리의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불안감에 떨며 상황을 가늠하려는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는 건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4줄 뿐이다. 화려한 군복을 입은 둘이 서로 장난스러운 미소를 교환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긴 칼을 꺼내든다. 그들이 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한 겹의 인간 벽을 사이에 두고 인세와 지옥이 갈린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목이 반쯤 베인 채 병사들 사이로 도망치려는 이를 웃고 있는 남자가 머리채를 잡은 채 목을 베어낸 광경뿐이다. 이 이후론 고개를 돌려버렸기 때문에.
 지옥이 완전히 사그라든 이후에도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곳에 어떤 광경이 펼쳐져 있을지, 저들이 만들어놓은 새로운 지옥이 어떤 모습일지 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가져야 할 감정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유기시킨다. 어쩌면 그를 통해 저들은 태연하게 임산부의 배를 찢고 노파의 몸에 기름과 불을 끼얹고 부녀에게 근친상간을 종용할 수 있는 것인가.
 또 다시 앞줄이 끌려간다. 이번엔 또 어떤 감각이 죽어갈지. 내 몸에 기생하는 그들의 감정이 괴사한 감각을 먹고 더욱 커져간다. 우리는 단순한 신체적 폭력의 피해자뿐만이 아니다.
 쾅!
 그들의 정신적 강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남은 건 세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