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사모케이건] 땅거미
도노 헤세
2016. 3. 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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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페이는 오늘도 칼날을 기다리며 잠에 든다. 밤은 그녀에게 독을 뒤집어쓰게 하는 시간이다. 유일하게 가면을 벗고 대호왕이 아닌 사모 페이가 될 수 있는 시간, 맹세를 받는 이가 아닌 사냥감이 되는 시간. 사모 페이는 자신을 물어뜯을 키탈저 사냥꾼을 기다린다.
터벅, 터벅. 숨죽인 발자국 소리를 사모 페이는 듣는다. 그리고 그 소리에도 불구하고 사모 페이는 깨지 않는다. 그녀는 사냥꾼의 비위를 충분히 맞춰줄 의향이다. 얌전하게, 목이 비틀어지는 사냥감. 그렇게 자신의 사냥꾼에게 숨이 끊길 수만 있다면 완벽한 밤이 될 텐데. 어리석게도 사냥꾼을 사랑해버린 사냥감은 얌전히 목을 내어주는 것 말고는 그에게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것도 사랑이라면, 케이건. 네가 영원히 키탈저 사냥꾼으로 남는다면 내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저 기뻐할 수 있겠지.
침대가 덜컹인다. 그 모든 움직임에 이미 다른 사냥감들이라면 쪼르르 도망갔어야 옳겠지만 가장 예민한 사냥감인 사모 페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 나를 봐. 비늘에 뒤덮힌 나가의 모습을 봐. 나의 키탈저 사냥꾼아, 너는 내 목을 전리품처럼 들고 기세 당당히 돌아가야 할 의무가 있어.
툭, 액체와 같은 것이 감은 얼굴 위로 떨어진다.
투둑, 그보다 무겁고 진득한 것이 다시금 얼굴로 떨어진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사모페이는 눈을 뜬다.
"사모..."
그녀의 사냥꾼이 보인다. 제 손바닥에 단검을 박아 넣고는 젖은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유일한 키탈저 사냥꾼. 그의 눈과 손에서 떨어지는 두 액체가 함께 섞여 비늘 돋은 얼굴을 적신다.
결국 우리는 실패자다. 사모 페이는 사냥감이 되는 데에 실패했고, 케이건 드라카는 키탈저 사냥꾼이 되는 데에 실패했다. 우리는 끝맺어질 수 없다. 끝은 다가오지 않는다. 영원히 애증 뿐이라.
허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가면을 쓰지 않았는데도 육성으로 웃음이 나온다. 정신적으로는 그가 못듣는 비명을 지르며, 사모페이는 웃는다. 제 사냥꾼을 끌어안으며 웃는다.
죽지 못하면 웃자꾸나,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제 빈 가슴을 상대의 박동소리로 달구며. 정신이 멀도록 비명을 질러대며 사모 페이의 웃음소리는 멎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의 끝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 될 웃음이 침대 위를 적시다 못해 땅바닥 아래로 긴다. 스물거리며 기어가는 사냥꾼과 사냥감의 시간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