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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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웅의 죽음은 세상도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어 슬픔을 토로하는 날이었다. 모인 자들의 위대함을 담기에 그 자리는 지나치게 비좁고 초라했으나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신이며 신과 필적한 영광을 가진 자들이건만 이 자리의 비통함 앞에선 스스로 소인이 되길 자청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음이요, 온 영광을 짊어진 자가 스틱스 강 너머로 떠나는 자리였으니.
모두가 기다리던 자가 들것에 실려 나오자 모인 이들은 차마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감히 이 자리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자는 들것을 매고 있는 이 둘뿐이었는데, 세간의 사람들이 보았다면 한 나라의 왕들이자 위대한 사령관과 장수가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개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들것에 실린 이의 모습을 보았다면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망자의 모습은 당장 몸을 일으켜 시익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산 이와 같았다. 평소의 무거운 갑옷을 벗고 가벼운 비단 옷을 입은 그의 몸에선 슬픔을 섞어 빚어낸 향유의 냄새가 났다. 어미 테티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감히 신조차 피 한 방울 내지 못할 몸에서 유일히 검게 변색된 발뒤꿈치가 보는 이의 탄식을 자아냈다. 한 뼘도 되지 않을 아주 작은 상처, 재간꾼의 농담같은 계략으로 만들어진 저 작은 상처가 이토록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높게 쌓인 전나무가 죽은 이의 몸을 받쳐올렸다. 그의 육신을 떠나보내는 것은 위대한 신들의 몫이었다. 올림푸스와 전 세계의 화로를 다스리는 여신 헤스티아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불씨를 옮겨왔다. 여신의 손에 들린 불씨가 전나무에 옮겨 붙자 모인 이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 여인네들의 숨죽인 울음소리 속에서 장수들이 입고 있는 갑옷도 주인의 말못할 심정을 대변하듯 바스락 쇳소리를 냈다.
불길은 죽은 이의 몸을 집어삼키고 산 이의 투지를 끓게 한다. 위대한 영웅을 전송하는 자리는 그의 기량을 나눠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만한 트로이 군과 겁 없는 헬레네의 절도자를 향한 분노가 모인 이들의 눈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들은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건만 한 마음으로 제 허리에 차고 있는 검자루를 꽉 쥐었다. 전장의 영광을 떠나보내는 데에 이 이상의 예우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끝을 모르고 타오르던 불도 점차 사그라들고, 완전히 검게 바스라진 잿더미 속으로 몇몇 이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그들의 손에 들린 금 항아리를 건네받으며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그 아름다움도 가리는 비통함으로 모인 이들을 다시금 슬프게 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새하얀 항아리 속 뼛가루만이 어미의 손에 의해 너울너울 흔들렸다. 이제 그만, 누군가의 말에 여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항아리를 들고 넓게 파인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구덩이 한 가운데 항아리를 놓는 손은 떨렸으나 오랜 관록의 여신은 아들의 영광 앞에서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죽은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뒷모습 앞에 모인 이들은 침묵으로 그 거대함을 위로했다.
영웅의 무덤 위로 전사들의 인사를 담은 흙더미가 뿌려진다. 그 행위에 있어서만큼은 신과 인간, 여자와 남자, 장수와 병졸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이가 무덤을 향해 흙을 뿌리고 눈물을 섞었다. 봉긋히 올라오는 둔덕은 그 눈물로 단단히 굳어 어리석은 자들의 야욕을 쳐낼 것이다.
아, 아킬레우스! 성급한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영웅의 이름을 외쳤다. 아킬레우스! 아킬레우스! 아킬레우스! 전장의 하늘 위로 영광된 외침이 터져흐른다.
고결한 영웅의 죽음은 세상도 그 이름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