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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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대체, 뭐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그것은 항상 그녀의 곁에 있었다. 어떨 때는 머리맡에, 두어발짝 앞에, 간신히 있다는 것을 알아볼수만 있을 정도로 멀찍이 있을 때도 있었다. 처음에 보았을 땐 눈썹에 티끌이 묻었나, 생각할 정도로 아주 작고 희무끄레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눈을 부비고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어도 그것은 뒤로 슥 피하기만 할 뿐 본인의 모습을 딱 그 뿌연 점만큼만 허락했다.
그녀가 침대에 누워 있는 지금도 그것은 그녀 위를 뱅글뱅글 돌며 눈길을 잡고 있었다. 링겔 꽃힌 주름진 손이 그것을 향해 뻗어가자 늘 그랬던 것처럼 살금 뒤로 물러났다. 다시 다가왔다가, 힘없는 손을 내저으면 슥 뒤로 빠지는, 그 아슬한 줄다리기에서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조글한 맨발이 어느새 덧버선을 신고 있었다. 약냄새가 풍기는 병원복을 벗은 몸이 편안해보이는 늘어진 몸빼바지를 펄럭였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린 그녀에게 세발자국 거리를 둔 그것은 잠시 아른거리다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희뿌옇게 남는 빛무리.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던 다리는 어느새 힘이 붙고, 그 발걸음에 맞춰 그것이 멀어지는 속도 또한 빨라진다. 그녀는 어느새 그것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염색을 해도 허연 뿌리가 보이던 파마머리는 날개죽지까지 오는 갈색 생머리가 되어 등 뒤에서 달싹이고, 스치는 주위로는 젊음을 바쳐 일했던 회사의 정경이 어렴풋이 지나갔다. 말 안듣던 아이와 억지로 담배를 끊느라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이 응원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 손길에 힘을 받아 더욱 발걸음을 빨리 할 수록 그것은 손에 채일 듯 잡힐 듯 가까워지고 있었다.
단정했던 정장이 어느새 아슬한 원피스로, 또각거리는 하이힐은 유명 상표가 달린 운동화로, 화장기 가득했던 얼굴이 보얀 피부로 돌아가는 동안 바스라진 미래의 잔재들이 그 길 위를 잠시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돌아갈 길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녀는 앞만 보고 뛰었다. 하얗고 통통한 손가락이 허우적대며 여전히 멈추지 않는 그것을 움켜쥐려다 놓치길 반복했다.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짧은 다리로 아장거리면서 팔을 휘젓자 그것 또한 속도를 맞춰주려는 듯 느긋하게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풀썩 엎어진 그녀가 엉엉 울음을 터트리자 그것은 멀어지는 것을 멈추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희미하던 빛이 아기의 눈에서 선명하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까진 무릎부터 흐르던 피가 그녀의 온 몸을 적시고, 안락한 어미의 품과의 단절을 의미하던 탯줄이 다시 이어지자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눈 앞이 까매졌다.
아, 잡혔다.
2014년 9월 20일 19시 27분경, 최경애(82세, 여) 사망. 퇴행성 뇌질환(알츠하이머)에 기인한 정신행동증상으로 인해 평소 환각을 보는 증세가 있었음. 유가족들의 말로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가 병원 창문에서 스스로 떨어졌다고 설명. 이후 시신의 뇌는 검사를 위해 연구소로 이송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