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심화야 1회차

서심화야 2015. 4. 23. 00:32

 

'AM 2:00'

 

시선, 그것은 어느 것에나 있다.

시선은 때론 부모가 되기도, 어느 순간 선생으로 변하기도 한다. 연인, 상사, 부부, 시선은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동시에 그것들이 되어있기도 하다. 또한 시선의 존재는 단지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로, 그 밑에서 바스러지는 모래 알갱이로, 또 그것을 쓸어올리는 바람으로도 변한다. 그렇게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 시선의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방심하지 말기를, 가장 은밀한 시간에 은밀한 장소에서도 시선은 언제나 따라붙고 있으니.

 

새벽 두 시, 집중의 시간. 검은 복면으로 몸을 가린 한 사람이 여러 번 해본 듯 익숙한 몸놀림으로 담을 넘는다. 놀랍게도 제법 높은 담을 훌쩍 뛰어넘어 착지하는데 밤은 여전히 고요하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그는 곧 살은 거리는 발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몇몇 방은 불이 켜져 있는 커다란 빌딩, 그는 빌딩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녹아든다.

새벽 두 시, 번잡의 시간. 말단 순경에겐 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남들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일과들을 헤아리며 컵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래던 그는 또다시 울리는 출동 신호에 부리나케 몸을 일으킨다. OO 기업에도둑이 들었다는 메시지를 빠르게 흝으며, 어느새 경찰차엔 시동이 걸려있다. 반도 비우지 못한 컵라면은 불어 가고 엑셀을 밟는 그의 몸은 어둠에 잠겨간다.

새벽 두 시, 애태움의 시간.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들을 걱정하던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꺼낸다. 번호를 하나씩 누를 때마다 바쁜 아들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고민에 고민을 곱씹으며 한참을 걸려 완성한 아들의 번호를 확인하며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냥 끊을까, 출동 중인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꽉 쥔 핸드폰에서 나오는 소리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쌓여있던 긴장이 탁 풀리고 아버지는 힘없이 통화를 끊는다. 아버지의 눈에 담긴 허탈함이 창밖의 밤으로 물든다.

새벽 두 시, 충격의 시간. 요란스레 울리는 전화벨에 남자는 짜증을 내며 일어난다. 오밤중에 뭐야, 뒤척이며 돌아눕는 아내의 소리를 뒤로하고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약간의 불쾌함이 섞인 어투로 전화를 받는다. 누구요? 이 새벽에. 그때까지도 잠에 취해있던 남자의 얼굴은 핸드폰에서 이어지는 말에 점점 일그러지다가 경악으로 바뀐다. 그, 그게 진짜입니까? 피해 상태는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옷을 걸쳐 입는 그에게 아내가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회사에 도둑이 들었대. 대체 어떤 미친놈이... 빨리 다녀와야겠어. 허둥지둥 양복 재킷을 걸치며 차 시동을 거는 남자의 몸이 밤 속으로 사라진다.

새벽 두 시, 열락의 시간. 한참을 헐떡대던 비대한 몸뚱이의 남자는 이젠 지저분한 미소를 띠며 옆에 누운 여자의 허리를 쓰다듬고 있다. 아이, 간지럽다니까. 근데 회장님, 아까 전화 안 받아봐도 돼요? 계속 울리던데. 콧소리 섞인 여자의 말에 느물거리는 표정은 더 짙어지고 지분거리던 손은 점점 아래로 향한다. 뭐 또 쓸데없는 전화겠지.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냐. 흐, 한번 더 할까? 팁은 두둑하게 얹어줄 테니. 여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가 다시 활짝 피어나고 붉은 조명은 들썩이는 흰 이불 위로 흉하게 얼룩진다. 추잡한 붉은색이 침묵의 칠흑 속으로 삼켜져간다.

새벽 두 시, 권태의 시간. 여자는 울긋불긋한 목덜미를 스카프로 가리며 한숨을 쉰다. 하루 종일 진한 화장에 찌들어있던 얼굴은 부석 해져있고 눈 밑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여력 하다. 비록 몸은 지쳤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 돈 걱정은 없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여자는 작은 쪽방으로 들어간다. 태현아, 누나 왔어. 그녀의 가다듬은 밝은 목소리에 허름한 방에 있던 소년이 대답 없이 벌떡 일어난다. 거칠게 쾅 닫히는 문소리에 씁쓸한 미소가 새카만 가난의 그림자 안으로 곪아간다.

새벽 두 시, 격정의 시간.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소년은 결국 제 분을 참지 못한 듯 굴러다니는 깡통을 거칠게 발로 찬다. 요란한 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린다. 답답한 숨을 후, 내쉬며 전봇대에 기댄 소년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어어, 너! 이거 어린놈의 새끼가 담배를 피워? 야,이 새끼야.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디 쌍심지를 켜고... 갑자기 다가와 잔소리를 퍼붓는 남자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씨발, 소년이 욕을 내뱉자 대뜸 주먹이 날아온다. 전봇대에 콱 부딪쳤다가 쓰러진 소년의 눈이 흔들린다. 씨발? 이런 씨발놈의 애새끼가 어디서 욕지거리야! 너 나랑 같이 경찰서 가. 너 같은 놈은 콩밥 좀먹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씩씩거리며 발길질을 해대는 남자에게 몇 대 맞던 소년은 그의 발목을 잡아챈다. 술에 전 몸이 어, 하면서 바닥에 부딪치고 그 위로 소년의 몸이 올라탄다. 버둥거리는 남자의 목을 조르며 소년의 피맺힌 입가가 띄는 웃음이 더러움으로 검게 착색된 세상에 가라앉는다.

시선,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비추는 그것은 어느 곳에나 있다.

'서심화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심화야 9회차  (0) 2015.04.23
서심화야 7회차  (0) 2015.04.23
서심화야 4회차  (0) 2015.04.23
서심화야 3회차  (0) 2015.04.23
서심화야 2회차  (0) 2015.04.23
Posted by 도노 헤세
l